‘ 난민촌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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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교훈으로끝나는법이다.동화는 교훈으로 끝나는 법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해가 뜨기도 전에 삶이 시작되는 곳.

부서진 판잣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어디선가 스며 나온 비린내와 검게 탄 나무 냄새가 공기에 뒤섞여 떠도는 곳. 바닥은 항상 습하고 거치니, 비가 내리면 길은 진창이 되고, 마물들이 다녀간 흔적은 재와 핏자국으로 남는 곳.
 
그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 또 새벽부터 움직이냐. "
 
낡은 판자에 기댄 채 앉아 있던 스승이 눈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스승은 여느 때처럼 붉게 그을린 손으로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섰다. 머리는 덥수룩했고, 옷은 허름했다. 그러나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스승, 그는 난민촌에 정착하기 전부터 수많은 전장을 지나온 사람이었다.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곳에 남았는지 자세히 말한 적은 없었다.
 
다만, 그는 항상 웃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낙천적인 미소가 아니었다. 전장과 죽음을 익숙하게 마주해 온 사람이 지닌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은 피로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
어쩌면 그는 너무 오래 싸워왔고, 이제는 싸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 덫 점검하러 가는 거야. "
 
멧돼지 한 마리가 난민촌 외곽을 기웃거리다가 덫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아직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채 신음하고 있을 것이었다.
 
" 뭐 그렇게 부지런해. 너 그러다 진짜 썩던 콩처럼 될 거다. "
 
" 마물보다 빨리 움직여야 안 죽지. 그리고 제발 이름 좀 바꿔. "
 
서던 크로스, 그것은 우리 판자촌의 이름이었다. 스승의 스승이 좋아하던 옛 노래의 이름이랬는데, 내 귀엔 아무리 들어도 ‘썩던 콩’을 반복할 뿐인 노래였다.
 
이내 스승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 아! "
 
" 웃으라고 했잖아, 녀석아. 웃는 게 뭐 어렵냐?
네가 나이 먹고 보면 알 거다. 세상이 험해서 어차피 울 일은 많아. 웃을 수 있을 때 웃어야 해. "
 
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정리했다.

삶은 잔혹해, 웃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승은 항상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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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난민촌에 낯선 아이가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에타 어니언.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도망쳐 온 아이로 보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다는 듯 불안해했고, 손에 총을 쥐는 것조차 망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녀 또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 자, 봐. 이렇게 포수가 이렇게 총으로 제압한 멧돼지의 경동맥… 같은 부분을. 응. "
 
덫에 걸려 쓰러진 멧돼지 피가 분수처럼 뿌려졌다.
 
곧이어 동공이 풀렸고,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사냥하는 법을 익히는 동안에도 에타는 도축된 짐승의 핏자국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짐승이 마지막으로 숨을 헐떡이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것이 살아 있었음을 생각했다. 붉은 피가 흙바닥을 적셨고, 아직도 미지근한 온기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
 
짐승의 눈을 마주 보면, 그것이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순간. 그러나 나는 말없이 칼을 쥐어줄 뿐이었고, 에타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쥐어야 했다. 그녀도 살아가려면, 배워야지.
 
" 오만해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봐. 네가 죽인 거야. 그러니까 끝까지 봐야 해. "
 
" 아...! "
 
우리는 이를 악물고 짐승의 숨이 멎는 순간을 지켜봤다.
 
" 죽은 생명한테 감사하는 법은 하나뿐이야. 맛있게 먹는 것. 그게 아니라면 네가 죽겠지.
놀랄 힘이 남아있다면, 내일을 위해 아껴. "
 
라고, 나는 스승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살아남고 싶다면, 적어도 죽고 싶지 않다면 행동해야 한다고.
 
그 날, 에타는 멧돼지의 내장을 꺼내고 가죽을 벗기는 법을 배웠다. 별들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고, 그 희미한 빛이 그녀의 손등을 비추었다. 손에는 아직도 짐승의 피가, 비릿함이 차마 가시지 않았다.
 
그날 저녁, 불에 구운 멧돼지 고기를 입에 넣으며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맛있어. 정말 맛있어...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야말로 죽은 생명에 대한 마지막 예의니까.
 

 
어느 날, 스승은 묵묵히 담배를 피우다 입을 열었다.
 
" 인간이 짐승이랑 다른 게 뭔지 아냐. "
 
에타는 주저하며 입을 뗐다.
 
" ...생각할 수 있다는 것? "
 
나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짐승도 생각은 해. 하지만 그들은 힘이 전부야. 가장 강한 놈이 모든 걸 가진다. 하지만 인간은 달라. 힘이 아니라, 행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거야. "
 
그 스승은 나와 에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맞아. 네가 굶주리고, 무기를 들고, 짐승을 죽이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걸로 끝내선 안 돼. 누군가에게 상냥하려는 마음만은 잊지 마라.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지키는 것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그걸 잃어버리면, 결국 마물이랑 다를 게 없게 되는거야. "
 
우리는 조용히 스승을 바라봤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단순히 살아남는 존재가 아니라고.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리고, 두 사람은 밤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다음 날을 준비했다. 멀리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몇 달이나 지났을까, 어느 날 밤이었다.

알 수 없는 자들이 난민촌에 불을 질렀다. 판자촌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짙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불길을 피해 도망쳐보려 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 . . . "
 
" 가! 코마이, 지금 당장 가! "
 
마을이 오랜 시간 동안 타오르며 축적한 물질을 마지막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안개처럼 퍼지는 기체, 나선형으로 휘감기는 먼지띠, 중심에서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 생의 끝자락에서 만들어내는 오색빛은 아름답고도 잔혹했다. 그것은 마치, 이곳에서 흘러간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한순간에 태워버리는 것 같았다.
 
이는 참으로 뜨거운 것이었다.
 
나는 에타의 손을 세차게 잡아끌며 뛰었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피부를 태우듯 스쳤고, 폐 속으로 들어오는 연기가 목을 조였다. 시야가 흐려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넘어질 것만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눈에 비친 것은 불길 속에서 싸우는 스승의 모습이었다. 그는 온몸에 불을 뒤집어쓴 채, 의문의 적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칼을 휘두르는 동작마다 불꽃이 흩날렸고, 그의 거친 숨소리는 불길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 ...이 목숨을 서던 크로스에. "
 
그의 외침이 불길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스승의 마지막 신념을 증명하는 듯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스승을 남겨두고 도망치는 것은 가슴을 찢어놓을 듯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멈춘다면, 스승의 희생이 헛되이 될 뿐이었다.
 
이 불길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함께 살아온 날들이었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였던 우리의 삶이었다. 그러니, 살아야 했다.
 
그것이 우리 판자촌의 이름이었다.
 

 
스승에게 들었던 '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 샛길 '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발밑에서 거친 자갈이 튀어 오르고, 폐가 찢어질 듯한 호흡이 귓가를 울렸다. 등 뒤에선 짐승 같은 숨소리가 무겁게 따라붙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굉음과 함께 커다란 무언가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적인 열기와 공기의 출렁임이 감각을 마비시켰다.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마물이다. 너무나 익숙한 감각이지만, 이번만큼은 몸이 반응하기 전에 본능이 먼저 경고했다. 도망쳐야 한다.
 
시야 끝자락에 거대한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 아래 희미하게 윤곽이 드러나는 장벽. 도시를 감싸는 무겁고 차가운 돌벽.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의미하는 거대한 장애물.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틈이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포효가 귀청을 때렸다. 바닥을 박차는 둔탁한 울림과 함께 마물이 다시 돌진해왔다. 등을 타고 싸늘한 감각이 흘러내렸다. 단숨에 따라잡힐 것만 같다.
 
그리고, 그때.
 
오래된 돌무더기 사이로 덩굴이 얽혀 있는 좁은 틈이 보였다. 벽의 일부가 무너져 만들어진 좁은 통로. 한 명이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구멍. 틈새로 스며 나오는 희미한 바람이 피부를 스쳤다.
 
그렇게, 그곳에서 멈춰 섰다.
 
" ! "
 
좁았다.
 
두 사람이 한 번에 지나가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 한 명씩 나아가야만 하는 곳.
 
등 뒤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허락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소용돌이치듯 어지러웠다. 선택해야 했다.
 
" . . .그래, 상냥함을 잃지 않기. "
 
" 뭐? "
 
결단을 내리고, 나는 에타를 벽 틈으로 밀어넣었다.
 
에타가 몸을 돌려 손을 뻗었지만, 나는 무시하고 반대쪽으로 뛰어 마물의 주의를 끌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저려왔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죽기살기로 달려서, 시간을 충분히 벌었다 싶었을 때. 마물을 제압해보려 마음먹은 그 순간에.
 
그 때, 이내 스스로가 투명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