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스퀘어의 유령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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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아니면찬란한혜성이되어.몰락, 아니면 찬란한 혜성이 되어.
 
나는 분명 살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손을 휘저어도, 땅에 그림자만이 희미하게 드리웠다.
 
내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거리에 넘치는 인파 속에서도 사람들은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도시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세계에서 고립되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음식을 집어 들면, 사람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시장 골목에서 빵 한 조각을 가져가려 했을 때, 가게 주인은 유령이 나타났다며 난리를 쳤다.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한 채 며칠을 버텼다.

도시에는 수많은 가게와 일자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구할 수도 없었다.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적색지대에서 온 난민 출신인 나이기에, 더더욱 일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깊은 밤이 되면 버려진 건물에서 웅크리고 잠들었다. 춥고 배고프고, 절망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피폐해졌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했다. 무엇을 하든 세상은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 수 없었고, 누구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이 도시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앉아, 흐려져 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그럼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다. 완벽하게, 철저하게 고립된 채.
나는 선한 ‘ 사람 ’이길 거부당했다.

" 아... 사람도 아니야. "
 
웃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절망 끝에 기찻길로 몸을 던지려 했다.
 
감정이 억제되지 못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퍼져 나갔다. 절망과 공포,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감정이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제로 처박혔다. 그래, 그녀의 이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 ...?! "
 
심장이 요동치고, 혈관이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고, 세상 모든 것이 느려져보이고, 식은 땀이 흘렀으며 눈 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모든 순간순간이 마이크로초 단위로 뇌리에 새겨지는 듯 보였고, 모든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 일렁여서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뇌가 작동하기를 멈추었다.
 
플랫폼에 있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 몸을 던졌고, 한순간에 참사가 벌어졌음을 인지한 것은 나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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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낯선 방에 누워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타 어니언.
 
눈을 뜬다는 것은 곧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세상이 다시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우연히 쓰러진 나를 발견해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아직 잡히지 않은 것에는 그녀의 덕도 있으리라. 천운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집단 자살 사건.
 
카메라가 비춘 플랫폼은 처참했다. 울부짖는 유가족들, 핏자국이 남아 있는 콘크리트 바닥, 한 짝만 덩그러니 놓인 신발. 기자가 심각한 얼굴로 원인을 분석하려 애썼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나였다.
 
숨이 턱 막혔다. 심장이 두들겨 맞듯 쿵쿵 뛰었다. 손끝이 떨렸다. 나는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을 울적하게 만들었고,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다르다.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폭주했다. 내 존재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살아남아 버린 걸까.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싶지 않았다.
정말로 모두에게 미움받게 될까 두려웠다.
 
이에 공포가 밀려왔다.
선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더 이상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려 애썼다. 도망쳐야 했다. 다시 혼자가 되어야 했다.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휘청였다.
 
그 때 에타가 말을 던졌다.
 
" ...이별은 평범하게 자주 일어나는 법이죠.
사람들은 피하려고 하지만, 결국엔 벌어지죠.
 
무지 아파요. 저도 몇 번이나 겪어봤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미소지을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어때요, 저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나요? "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척해 주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연민하지 않았다.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어떤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눈치채면서도, 그 모든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깊은 배려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의 말 한 마디, 그 미소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 작은 호의가, 오랫동안 차가운 어둠 속을 떠돌던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이 도시에 들어온 이후,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에타의 말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주 잠깐이나마 존재를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용감히 구하러 와주었는데.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목이 말라왔다. 숨이 가빠졌다. 내 안에 가둬두었던 감정이 균열을 일으키더니, 마침내 넘쳐흘렀다. 짧은 투명인간의 발작과 함께, 멈춘 듯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쏟아졌다. 뜨겁고도 차가운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 그래, 상냥함을 잃지 않기. "
 
그리고 이내 서로에게 웃어보였다.
 
에타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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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도시의 괴담이 되었다. 좋은 쪽으로!
 
괴담 속 존재로 불리면서도, 여전히 친절을 베풀었다. 누군가에겐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주고, 어두운 골목에선 위험에 처한 이를 돕기도 했다. 히어로들은 여전히 나를 추적했고, 계속 도망쳐야 했다.
 
돈은 늘 궁해서 폐쇄된 지하철역을 은신처 삼아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친절한 사람으로 남으려 노력했다.

한때 희망을 품었던 도시에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스승이 죽기 전까지 지켜주려던 것이었으니까.
이대로 죽으면,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으니까 말이다.
 
에타가 난민촌을 불태운 요원과 친해졌음을 알게 된 것은 몇 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