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기가 오늘부터 우리의 학교야.그리고 우리 학교는, 로봇으로 변신하기도 해! "내가 어릴 적의 일이다.
세츠나 라부아지에.
그 아이는 나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뭔가 유령을 본다는 소문이 있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별로 인기가 있지는 않았다.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만.
어렸던 아이들은 학교 구석 작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한 가운데 홀로 자라난 나무가 특징적인 그 놀이터에서 자주 모였다. 곤충, 새 따위도 여기선 모두 친구였다.
그곳에서 나는 살았다.
그 놀이터를 학교로 칭하고, 놀이를 즐겼다. 놀이터 언덕 밑의 굴을 빠져나오면, 그때부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상상과 몰입은 최고의 그래픽이라고 했던가, 어떤 애니메이션처럼 학교가 로봇으로 변하고.
그렇게 괴물과 싸우는 상상을 즐겼다.
한창 그럴 나이였다. 다만 조금 걸리는 점이 있다면, 나이 차가 있었던 나는 학교에 가야 했다는 점이다.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아이는 점점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녀는 내가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 바쁜 나와 헤어지게 될까 두려웠던 그 아이는, 어느 날 나에게 이런 것을 제안했다.
" 학교라면 자고로 졸업 앨범 아니겠어? 사진을 찍어서, 여기에 묻어두자. "즉슨, 미래의 졸업 앨범에 실을 사진과 추억을 잔뜩 담아 여기 상자에 보관하고, 마지막에 같이 꺼내보자는 이야기였다.
일종의 타임캡슐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로 우린 만날 때마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처음엔 단순한 놀이였지만, 점점 의미가 깊어졌다. 우리는 각자 소중한 물건을 하나씩 가져와 타임캡슐 안에 넣었다. 그녀는 늘 목에 걸고 다니던 파란 보석이 달린 작은 목걸이를 넣었고, 나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받은 작은 로봇 모형을 넣었다.
" 나중에, 나중에 꼭 같이 열어보자. 그때까지 잊지 않기! "그녀는 밝게 웃었지만, 그 말이 어쩐지 슬프게 들렸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내 이능력도 내 몸과 함께 점점 자라났다. 점점 무거워지고, 단단해졌다. 지식이 늘어서인지 몸이 성장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단단해질수록, 더 깊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녀와는 마치 대기권을 벗어나 떠오르는 작은 위성처럼,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예전엔 손쉽게 오르던 놀이터의 나무도, 더는 가지가 내 몸을 지탱하지 못해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철봉에 매달리는 놀이도 이젠 불가능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철봉이 휘었고, 시소는 내가 한 번만 올라가도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버렸다.
함께했던 모든 놀이들이 하나둘씩 내게서 멀어졌다.
" 슬슬 쌀쌀해지네... 벌써 옷을 껴입어야 해. "그렇게 가을이 오고, 갈수록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짧아지는 듯했다. 나는 내 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고, 이전처럼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아이는 아파하는 나를 볼 때마다 슬픈 표정을 지었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한 걸까. 그녀는 요즘 들어 자주 먼 곳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 혹시,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적 있어?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내 삶은 풍족했고, 잃어버린 것이라 해봐야 장난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런 내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 씁쓸하기만 했다.
" 나는 있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어딘가 모르게 바람처럼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 짜잔, 이거 볼래? "간만에 그 아이와 다시 만났을 때, 골판지와 양동이 따위로 허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나무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아이는 그것을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 이게 뭐야? "" 우리 학교 로봇이야. "그녀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미소 너머로 어딘가 아련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정황상 상상 속 학교 로봇을 만들고 싶었던 듯 보였다. 그녀가 아끼던 파란 보석이 딸린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골판지와 양동이에 불과했지만, 그 아이가 정성 들여 만든 것이었다. 입어주는 게 도리일 것으로 생각하여, 나는 그 로봇을 조심스럽게 입었다.
" 우우와! 진짜 강해 보인다!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놀아주었다. 마치 그 로봇이 우리를 지켜줄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마지막이 온다면, 그 로봇도 마지막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잘 보관해 두었다.
언제나 기적을 일으켜 이기는 로봇을 만든 이유가 이제야 와닿는 듯했다. 굳이 나에게 그것을 입힌 것은, 내가 그 로봇처럼 강인하게 되어 언제까지고 함께하길 바란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젠 그 로봇이 정말 학교를 지켜줄 것 같아 듬직해 보이기도 해서, 애지중지 아꼈다. 혹여나 그 아이가 나에게 바랐던 기적이 있다면, 그것만큼은 이뤄주고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진눈깨비가 내리던 나날이었다.
그래.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하늘이 세상을 감쌌다. 마치 학교 종이 하교 시간을 알리듯 소음이 들려올 뿐이었다.
급히 수업을 듣고 놀이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어 달릴 필요가 있었지만, 힘에 부쳐 그러지 못했다.
도착하고 나니, 어쩐지 무언가의 요원들이 그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소란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불길한 정적이 공존하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어느 접근 금지 요청을 무시한 채 밀고 들어간 결과, 눈앞엔 형언할 수 없는 공간의 상처와 괴물, 그리고 다친 그녀가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별이 죽어가면서 만들어진 중력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듯했다. 주변은 일그러진 잔해들로 가득했고,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 자신이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눈앞에서 요원들이 마물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녀가 아끼던 파란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피에 젖어 빛을 잃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눈물을 참으며 괴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무슨 생각이었을까가 아냐. 솔직히 말하면,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아직 졸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빨랐다면 달랐을까, 자책이 가득한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와 함께 꿈꾸던 학교, 그곳에서의 시간, 우리의 추억. 그 모든 것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붙잡고 싶었다. 끝내고 싶지 않았다.
" 기적, 이룰 수 있었어? "허나 그녀는 크게 다친 채, 어느샌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은 희미했다. 미소를 지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너무도 흐릿했다.
우리의 학교엔 이미 사라져버린 타임캡슐과, 학교 로봇의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결국 기억조차 중력에 끌려 무너지고 마는 것일까.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그녀를 졸업해야 했다.
우리의 학교는 로봇이 된다.
허나 하얀 눈에 너무나 눈부셨던 학교는 빛을 잃고 삼켜지고 있었다. 겨울 바람에 맞닿은 눈시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우리처럼 늙고, 죽고, 사라진다. 마치 어린시절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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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적, 나중에라도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