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탄생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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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내어주던손은,가랑비에젖었으니.빵을 내어 주던 손은, 가랑비에 젖었으니.
 
옛날.
 
피로 물든 황혼이 난민촌을 삼키던 날,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벽 사이에 쓰러졌다.
 
그녀의 배는 부풀어 있었고, 곧 생명을 내놓아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바람과, 그녀를 노리는 마물들만이 있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떼어내지도 못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끝이 마른 흙을 움켜쥐었고, 입술을 깨물며 버티려 했다. 그러나 통증이 점점 더 깊어지면서, 그녀는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짐승들의 움직임이 들렸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며 날카로운 냄새를 흩뿌렸다. 피 냄새였다. 마물들은 저 멀리서부터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뒤틀며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도망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오히려 짐승들의 이목을 끌 뿐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배를 부여잡았다.
 
그녀의 몸에서 생명이 나오려 할 때, 마물들이 점점 다가왔다. 핏내를 맡은 짐승들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서 꿈틀거렸고, 여자는 공포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와 함께 잡아먹힐 것이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떨리는 숨이 흘러나왔다. 절망감이 몰려왔지만, 몸 안의 생명은 이미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때, 강렬한 비명이 어둠을 찢었다.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녀는 마지막 힘을 짜내 외쳤다. 그리고 핏물이 터져 나왔다. 배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그녀의 몸에서 생명이 쏟아져 나왔다. 차갑고 끈적한 감각이 배 아래로 퍼졌다.
 
아이는 어머니의 살을 찢으며 태어났다.
 
그녀의 몸을 가르는 순간, 세상은 그녀를 피 묻은 아이로 불렀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생, 그 탄생은 재앙과도 같았다. 마물들이 울부짖으며 그녀를 덮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칼이 빛을 그렸다.
 
" . . . "
 
아아.
 
길바닥에서 나는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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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이 모여드는 곳에 물이 있었고, 정처 없이 그 위를 떠다니던 포르테는 이내 또 다른 난민촌에 정착했다.
 
도달한 난민촌은 말 그대로 정체 모를 혼탁한 물 위에 떠 있는 기억이었다.
 
버려진 아이들이 모여 사는 그곳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딴섬처럼 존재했다. 다른 난민촌 사람들은 일부러 그쪽을 피해 다녔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도 차갑고, 그들의 악독함이 어른들조차 소름돋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들 말이다. 자고로 선악이란 배고픔 앞에서 의미를 잃는 법이었다. 세상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일찍이 배워진 본능이었고, 배고픔과 상처는 곧 날카로운 도구였으니, 서로를 버리기 바쁜 그곳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야생은 머지않아 효율을 위해 법칙을 형성했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본능처럼 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글로 쓰인 규율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것을 지켰다. 핏물 위에 세워진 이는 기형적이고 잔혹했으나, 동시에 분명히 하나의 사회였다.
 
음식을 먼저 발견한 자가 주인이라는 원칙이 세워졌다. 하지만 너무 많이 움켜쥐면 곧장 무리에게서 표적이 되었다. 발견자는 일부를 내어놓아야 했고, 그 대가로 목숨을 부지했다.
힘센 자, 잔혹한 자, 교활한 자가 무리의 중심이 되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 곁에 붙어 살아남았다. 그러나 리더라 불리는 자조차 단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주변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밥’ ‘분배’를 약속해야 했다.
끝으로, 아이들은 서로에게 도전 과제를 던지며 생존 능력을 시험했다. 더 오래 물에 잠수하기, 더 멀리 위험한 구역까지 다녀오기, 싸움에서 버티기. 이는 집단이 인정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도태된 자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포르테는 특별한 존재였다. 열댓 살의 그녀는 공식적인 리더는 아니었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녀는 마물을 길들이는 존재였고, 적색 지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센 자’에 속했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야윈 체격에,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른 그녀가 마물을 아내는 모습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 . . . . . . "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숨을 들이켰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와 박히는 소리를 들었다. 먼지와 시궁창 냄새가 가득한 난민촌의 공기 속에서, 그녀의 숨결은 믿기 힘들 만큼 맑았다. 마치 이곳이 아니라, 꽃향기와 새소리로 가득한 낯선 천국에서 흘러나온 아이 같았다.
 
그 아이는 다른 고아들과 달랐다. 모두가 손톱을 세워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 때, 그녀만은 손끝을 접어 작은 꽃을 만들 줄 알았다. 그 연약함이야말로 나를 미치게 했다. 왜냐하면, 연약한 것은 부서지기 쉽고, 더 애틋하게 되는 법이었다.

누더기 같은 원피스가 바람에 흩날릴 때, 그녀의 외모는 비록 흙탕물 위에 있었지만 달빛처럼 반짝였고, 그 웃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으며, 계속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아, 저 아이가 웃을 때도, 울 때도, 숨을 쉴 때조차 나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그녀의 손이 내 손 위에 얹힌다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길은 그만큼 순수했고, 내 욕망은 더럽고 잔혹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모자랄 정도로 말이다. 이런 단어로든 너무 희미하고 연약했다. 그래그래, 어쩌면 독이나 열병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 미야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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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독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질투.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몸 안에서 퍼져나갔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고, 온몸이 떨렸다.
 
나는 며칠 동안 미야코와 히로라는 소년을 관찰했다. 그들은 분명히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 미야코는 히로 앞에서만 보이는 특별한 표정을 했고, 히로는 미야코를 보는 눈빛이 다른 사람을 볼 때와 완전히 달랐다.
 
마음속에서 어둠이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히로를 제거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나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섬의 아이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분명 별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더 교묘한 방법을 선택했다.

너는 그녀를 지킬 수 없어.
아이들 사이에서 너를 밀어내려 하는 것도 느꼈을 거야.
너는 그녀를 사랑하지?
그런데, 그럴 힘은 없는 것 같네.
배도 좀 고픈 것 같고.
너도 살아남는 법은 알고 있잖아?
하지만 함께 살아남으려면 더욱 많은 것이 필요해.
내가 강해질 수 있게 도와줄게.
히로, 남자다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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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야코가 진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울면서 히로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더 이상 그녀가 알던 히로가 아니었다. 포르테의 조작과 죄책감에 미쳐버린, 마물이 되어버린 히로였다.
히로는 중얼거리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미야코는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히로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칼이 히로의 가슴을 관통했다.
 
.
.
.
 
" 히로는 원래 나쁜 놈이었어. 너도 이제 알았지? "
 
포르테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 이 아이는 우리 사이의 아이야. 너와 나, 우리가 함께 키우는 거야. "
 
그리고 시간이 지나 출산 이후.
그 밤, 미야코는 아이를 데리고 도주했다. 포르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도주한 미야코는 결심했다. 이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하다. 진짜 아버지인 히로는 죽었지만,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가위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남자 옷을 입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걸음걸이를 바꿨다. 미야코는 죽었다. 이제 그녀는 '히로'였다.

아이는 자랐다. 시즈마 코마이라는 이름을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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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포르테 곁엔 변함없는 마물만이 남았다.
그녀에게 있어 마물은 떠나지도 않고, 상처 주지도 않는 존재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어쩌면 인간보다 마물이 우월한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그녀는 그녀의 섬을 지웠다.
 
좀 더 많은 마물. 내 편이 되어줄 전부.
그 길로 그녀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마물화에 대해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다.